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본권에 수록된 공생 가설 중

올해 첫 책. 리디북스 포인트 충전한 김에 구매했다. 작년에 말 많아서 꼭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집. 가장 인상깊던 에피소드는 '공생 가설'과 '감정의 물성'.

본권에 수록된 감정의 물성 중

철학적이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글들이었다. 우리가 인간성이라 부르는 건 무엇인가? 인간성은 어디서 오는가? 과학으로 만들어진 인공 지성체는 완전하게 인간을 모방할 수 있는가?

SF를 좋아하는 이유야 많지만 큰 이유는 과학과 풍부한 상상력 사이를 메우는 건 결국 인간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과학 기술의 사실성이나 전망을 나열하는 거라면 논문을 보는 게 나을 것이다. 상상력과 과학 사이를 인간의 감성과 인간 간의 갈등으로 메워야 비로소 SF 문학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소재는 과학과 기술 사이의 윤리성이나 과학이 인류 소통과 교류를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의 소재들. 권내에 수록된 다른 작품인 '나의 우주 영웅에 대하여'나 '관내분실' 역시 후자에 속하는 이야기인지라 재미있게 읽었다.

감정의 물성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감정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것이 제법 매력적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감정을 구체화시키기 위해서 그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않던가. 그렇게 이름을 붙여 나름 구체화한 관념을 잘라내버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으스러뜨리고 싶어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가장 큰 위안을 얻는다. 우울할 때 슬픈 영화를 보거나 슬픈 노래를 듣듯이. 구체적인 형태를 띈 '감정'에 자신을 투영하고, 그로부터 알게모르게 위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 같아 좋았다.